언제나처럼 했던 말을 또 하던 오후내내
주적주적 내리는 빗소리 속에서 나른한 하품을 뽑는다.
라임을 상실한 리듬의 고동을 확인한 왼손은
차근차근 몸을 더듬으며 가슴에서 멀어진다.
가칠한 허벅지 근처, 불쾌한 무언가에 다다른 후엔
의식과 무의식이 경계없이 노그라든다.
꿈결에 나는 장난꾸러기 꼬마가 된 듯이
어느 분홍빛 대문의 초인종을 누르고서는 멀리 도망친다.
등교를 싫어하던 꼬마의 그림일기에는
낯뜨거운 말괄량이의 풋사랑이 써 있다.
두 눈에 힘을 밀어주어
감각을 되찾으려 노력해보자 가까스로 불안함이 회수된다.
빌어먹을 현실감에 끈적거리는 몸을 씻쳐놓는다.
내 삶은 걸음걸이와 닮아 있고
습관처럼 넘어지지 않으려는 피곤한 근육의 비명마다
프랙탈꼴 경험이 파고든다.
깊숙하게, 버섯의 뿌리처럼.
도망가버린 나른함의 자리에 밀물처럼 고온의 소금이 들이닥친다.
그걸 누구를 위해 헌사할 수 있을까.
의미를 잃은 증거는 강이 아닌 혈관을 닮아간다.
파르 떨리는 입술을 구부리고 깨물면서
창가에 선 나는 비교적 시큼한 탄성을 쏠 수 밖에.
그곳엔 비가 내리지 않는 차가운 가을이 있을 뿐
빗소리를 낼 어느 여유도 보이지 않는다.
그럴 줄 몰랐던 이별의 문구가 하나, 둘 돌아온다.
불안함이 멈춘다.
밀리미터 하나 빼지 않고 전신의 뼈가 날 비웃는다.
호기심이 죽는다.
내멋대로 정해버린 날씨와
제멋대로 말해버린 사랑이
영혼을 불태워버린다.
내 고통, 그리고 미소는 피에로처럼 잔뜩 움추러든다.
장난감 칼을 들고 모르는 쪽이 더 좋은 진실에 대적했다.
타협이라는 훈장과 경험이라는 전리품은 꽤나 가치있다.
# by 크리 | 2009/10/12 00: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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