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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절
졸린 눈 같은건 아무래도 좋다.
이분마다 하품을 한다.
거리를 채우던 안개가 너무 높아 잘려나간 달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잔뜩 예쁜 단어를 모아두었던 종이는 구겨진 재가 되고 만다.
겨울이 되고 싶은 바람이 서서히 북극의 화장을 한다.
좁지만 뻔한 길 위를 우두커니.

편두통이 잠깐 떨어졌을 때 난 황홀해진다.
어디서 배워먹은 지저분한 습관일까.
고통이 마약이 된다.
연애가 일상에게 그러듯이.

자꾸 떠오르려는 그걸 가라앉히면서 빈 거리를 밍숭맹숭 본다.
사진처럼 고이 모셔둔 메모지와 같은 그래프에서
음산하고 또 나른한 추억을 맛본다.
이렇게 나약해진 개인의 틈에 달콤한 과도가 꽂힌다고 했다.
다이아몬드는 되지 못하지만 영롱한 유리가 되기로 한 결심에 금이 간다.
야릇한 신음소리가 파쇄음을 대신한다.
눈꺼플이 움직이는 동안은 너무 길어서 벌써 시신은 서너개가 쌓인다.
죽어가는 내 얼굴들이 하나같이 증오로 가득하다.
지옥도와 같이 고개를 돌릴 수가 없다.
분노한 미간은 생각의 계곡을 가로질러 날아와
내 감옥을 사정없이 두들긴다.
감옥.
그래 감옥을.

이마를 잠깐 만지고 나자 코가 아프다.
아주 멀리서 빛의 냄새가 퍼져 나온다.
지독한 향수라도 되는 양 코를 막아보지만 부질없다.
아침냄새가 나를 떠민다.

산책중독은 재미로 가득하다.
그러나 하나 뿐인 발소리와 쥘 것이 없는 빈 양손은 그렇지 않다.
쓸모 없는 몸뚱이를 규칙적으로 씻는 것은
타인의 하루를 모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비누향으로 가릴 수 있는 한가지를 생각하며 점수를 매긴다.

며칠째나 연속으로
잠에 드는 시간을 내가 쥐지 못한채로
몽롱한 절벽 위에 비틀거리고 있다.
하릴없이 기절의 관에 나를 눕힌다.
누군가 부활의 기도를 해줄 걸 바래보지만 현실을 알고 있다.
아무도 가면을 놓으려 하지 않지.
풀벌레와 잎새를 스치는 바람소리는 없지만
째깍거리는 시계를 메트로놈삼아 수를 센다.
얼마에 도달하면 기절할 수 있을지 그리며.
# by 크리 | 2009/09/27 00:46 | 입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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