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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욱한 안개사이를 걷어내면서 앞으로 조금 걸었다.
화초를 키우려고 약간 뿌린 눈물이 늪이 되어 사방을 메웠다.
매 겨울마다 한번씩 얼었던 뿌리는 다음해 봄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듯이
되살아 나지만
나는 여전히 꿈과 가까운 호수가에 누운채 죽어있다.
어느 비가 개인 날이면 그 향을 찾아 거리로 나가보지만
그곳이 아닌 이 길가는 그것이 없는 길일 뿐이다.

우연히도 길을 채운 별모양의 공간이 나를 불렀다.
너는 아니었지만 너와 꼭 닮은 그림자.
나는 환청을 의심했고
딜루전을 추측해 보았고
그러는 동안 발이 끊어져 그 자리에 서 있다.

풀벌레를 보는 듯 지나가는 그 시선 속에서 나는 꿈을 되찾았다.
습관처럼 눈을 뜨며 왼손으로 확인하는 실재감이 떠올랐다.
발끝으로 보냈던 피가 돌아오지 않는 기분으로
나는 가던 길을 재촉했다.
수시간이 지나 나는 다시 화초에 물을 준다.

아마도 칠백일이 지나던 어느날 나는
너와 닮은 이름을 보고도 심장이 망가지지 않게 되었다고 자신했다.
망각을 선물로 보관하길 잘 한 기분이 들었지.
하나씩 하나씩 바람이 만든 파도가 해변을 찾아오듯
그후로 나는 스무해 중반의 청년을 연기하고자 했다.
그제껏 가진 걸 전부 버리고
잠깐 나를 감싼 기억에 대한 복수를 접어두고서.
조금씩 조금씩 매일밤마다 달님의 미소가 차오르듯.

하지만 나는 알아버렸다.
아무도 어제와 내일의 불연속을 의심할 수 없다는 걸.
종말을 예고하고자 진행했던 밤들에서
그가 끊임없이 말했던 건
자신을 버릴 수 없음을 시사하는 것.

수십일 수백일이 지나면 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어느 점술가도 알아내지 못한 미래가 내게 다가와 기억을 할퀸다.
무력하고 우울한 내 별모양의 증세일 거라고 나를 속여보지만
내 하루하루 모두가 거짓이고 진짜이기에
나는 다시 그 언덕위에서 양떼를 세며 먹구름의 빗물을 맛본다.

상냥하게 나를 찾아온 불면증.
꿈은 여전히 나를 아프게 한다.
너와 같은 시공에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기계는 사람이 되려하고
사람은 기계가 되려한다.
자신에게 없는 걸 희망하는 것이 본성이다.
네 예쁜 웃음을 잃어버린 내 공허한 곁의 애절함처럼.
# by 크리 | 2009/04/30 00:32 | 영혼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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