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지만 꾸준히
는 자기희망고문
트위터; twitter.com/cryolich
라이브 메신저; cryolich@hotmail.com
새벽이 내게 해코지를 한것도 아닐텐데 내키지 않고 버겁다,
시골에서 온 내 비밀을 알고 있는 소꿉친구 전학생마냥.
차고 추워 잠긴 문을 열어 나갈 엄두도 안 나는데
몸과 사이나쁜 마음은 눈밭의 강아지처럼 버둥대기 바쁘다.
잠깐 졸다 일어나는 매 자정이 숨가쁘고 안쓰럽다.
행인의 발소리가 독촉을 해 온다, 빚진것도 없는데..
불안정에 안정.
숱한 이별과 황폐의 새 끝마다 오늘이, 지금이 밀어든다.
기다림에 지친 나를 발견하지 못하게 끊임없이 되먹임을 먹여야 하련만
원하지 않고 원할 수 없던 것들이 이마저 방해한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연필을 들고 손을 부시럭대는 정도.
못난 정수 필터가 걸러오는 생각을 짜내 자정을 남기는 수준.
찾을지 어떨지 모를 사전을 만들기를 반복하는 맹랑한 단계.
어두운 심해속에 기억해 낼 수 없는 최초의 지금이 숨을 쉬고 있다.
무저갱과 그 너머로, 인식되었던 지금이 떠내려가는 동안
비명인지 요청인지 알 수 없는 거품들이 수면으로 떠오른다.
또 다른 지금에서 헤엄치는 그에게 무지개빛의 방울이 달려들어
회한을 주입한 뒤 눈물을 추출한다.
그는 수없는 생각에 둘러쌓인채 별볼일 없는 가치에 번호를 매긴다.
잴 수 없는 지금의 길이만큼 열정적이나
불확정성에 희석된 미래만큼 회의적이다.
그림은 흐르고, 음악이 펼쳐진 장의 철학적 핵심에 서서
나선의 자취를 남긴 제각각인 윤회의 단면을 느끼려
일곱가지 감각을 곤두세워 보건만 기관에겐 온기가 없다.
어느 일정의 특이점도 예외적이지 않다.
호도되는 믿음들에서 문득 통찰만이 유사성을 간직한다.
관측에 있어 무능한 가운데 열없는 반드시 틀릴 추측에 사로잡히었다.
덧없고 빠른 일출의 연속이 달가울리 없건만 애써 자해하며 여유를 밟는다.
눈들이 원하는 나와 그 나의 간극을 얼마나 인정하며 살랴,
내일이었고 오늘이었으나 어제가 돼버린 깊은 밤을 향해 발자국의 방향을 튼다.
보통은 잠에서 멀어지면 그렇게 되지만
별 시시콜콜한 고행의 뒤에 그것이 기다린다.
감정에 순응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제어한다는 것은 시간의 이동.
언젠가 그 몰두에 시들해지고 질려할 때를 극히 이르게 포옹하는 짓.
과격하게 억제된 치열함은
극기와 피곤에 끝에 기다리는 몽롱함과 같다.
수없이 도달하지만 수없이 지닐 수 없는 것.
매번 되어 보는 나와 항상 지나쳐 가는 내가 추측하는 것.
똑똑하지만 어리석고 튼튼하지만 흐믈대는 것.
천의 이름을 가진 부를 수 없는 짙은 것.
친구한테 iPod*1을 받아서 손에 익히고 있다.
손에 쥘 수 있는 미디어 파일은 지금은 낯설지만
온기와 촉감을 지닌 날이 오게 되리라*2.
나는 사전의 진화를 고기*3에서 종이로, 종이에서 전기로 분류했는데
이것은 장난감의 구조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겠다.
손에 쥘 수 있는 전기 장난감이 인간성을 해치지는 않을지 걱정이지만
그에 맞추어 적응하겠지, 그렇게 설계*4되었으니까.
*1
공식문서가 아닌 것에 대문자를 쓰는 것을, 나를 아주 싫어한다.
물론 이 글은 공식문서가 아니다.
*2
증강현실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감각의 흐름을 따라
종국에는 육감을 모두 포함할 것이라는 전망.
*3
구전을 이른다. 언어는 비록 문자가 없어도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진화에 따라 저장성과 접근성이 크게 발달했다.
*4
결정론적 세계관을 암시하고 있을 뿐 종교와는 상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