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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시스템의 디자이너는 사악한 천재다.
자신을 지울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지 않은 게으른 개발자인 동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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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크리 | 2010/12/14 00:00 | 영혼 | 덧글(32)
lying lie
언제나처럼 했던 말을 또 하던 오후내내
주적주적 내리는 빗소리 속에서 나른한 하품을 뽑는다.
라임을 상실한 리듬의 고동을 확인한 왼손은
차근차근 몸을 더듬으며 가슴에서 멀어진다.
가칠한 허벅지 근처, 불쾌한 무언가에 다다른 후엔
의식과 무의식이 경계없이 노그라든다.

꿈결에 나는 장난꾸러기 꼬마가 된 듯이
어느 분홍빛 대문의 초인종을 누르고서는 멀리 도망친다.
등교를 싫어하던 꼬마의 그림일기에는
낯뜨거운 말괄량이의 풋사랑이 써 있다.

두 눈에 힘을 밀어주어
감각을 되찾으려 노력해보자 가까스로 불안함이 회수된다.
빌어먹을 현실감에 끈적거리는 몸을 씻쳐놓는다.
내 삶은 걸음걸이와 닮아 있고
습관처럼 넘어지지 않으려는 피곤한 근육의 비명마다
프랙탈꼴 경험이 파고든다.
깊숙하게, 버섯의 뿌리처럼.
도망가버린 나른함의 자리에 밀물처럼 고온의 소금이 들이닥친다.

그걸 누구를 위해 헌사할 수 있을까.
의미를 잃은 증거는 강이 아닌 혈관을 닮아간다.

파르 떨리는 입술을 구부리고 깨물면서
창가에 선 나는 비교적 시큼한 탄성을 쏠 수 밖에.
그곳엔 비가 내리지 않는 차가운 가을이 있을 뿐
빗소리를 낼 어느 여유도 보이지 않는다.

그럴 줄 몰랐던 이별의 문구가 하나, 둘 돌아온다.
불안함이 멈춘다.
밀리미터 하나 빼지 않고 전신의 뼈가 날 비웃는다.
호기심이 죽는다.
내멋대로 정해버린 날씨와
제멋대로 말해버린 사랑이
영혼을 불태워버린다.
내 고통, 그리고 미소는 피에로처럼 잔뜩 움추러든다.

장난감 칼을 들고 모르는 쪽이 더 좋은 진실에 대적했다.
타협이라는 훈장과 경험이라는 전리품은 꽤나 가치있다.
# by 크리 | 2009/10/12 00:49 | 입 | 트랙백 | 덧글(0)
weak
흰 새벽의 불안한 세시를 알리는 소리.
타지의 물이 뱃속을 채워오는 능욕감.

헛구역질이 나오는 순간마다 이를 움켜 물었다.
방심한 턱을 놓치지 않고 식도가 역류했다.
윤기있게 변해버린 두통약은 효과가 없고
바뀌지 않는 무지개의 색은 온화함이 없다.

호소하는 고통을 인정하는 세계는 없다.
모두가 자신의 눈과 자신의 입을 강요한다.
고민은 단정을 이길 수 없다.

열시간을 넘게 어지러운 잠 속을 헤맨다.
그렇지만 수십개월동안 해왔던 것의 하루치 연장일 뿐이다.
자꾸만 유약해지는 이해의 영역을
자연스레 납득할 수가 없다.

불꽃에 그을려 까딱할 수 없는 손을
검붉은 하늘 위로 일으켜 세우며 태양과 구름을 가려본다.
으스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다색호를 움켜쥐어보지만
오지 않는 것은 오지 않는다.
# by 크리 | 2009/10/06 00:48 | 영혼 | 트랙백 | 덧글(0)
오염
종종 싼 술잔이 놓인 탁자 앞에서 말하곤 하는게 있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걸 잘 모른다고.

한뼘정도만 떨어진 곳에서 살펴보면 누구나 자신의 방향을 볼 수 있다.
조금만 진지하게 노려보면 그 길의 앞과 뒤를 알 수 있다.
무엇 때문에 내린 결정인지 알 수 있는 기회는 수없이 많지만
아마도 세계의 설계자는 그것에 도달할 개인을 원하지 않았던 것 같다.

글을 내고 소리를 치는 것은 타인에게 주입하는 빗줄기다.
문서형 계몽이 찰나동안 의식의 병렬화를 노린다.
극단적으로 개인화된 언어와 그를 닮은 감성이 기적적으로 동일화 되는 때에
타인은 잠깐 동안의 충격으로 넘어지고
그렇게 일어나는 시간동안 자신의 방향을 눈치챌 것이다.

글에서 얻어지는 카타르시스는 온전하게 글쓴이의 의도껏 흐르진 못 하지만
충동적인 충격, 그 허물어짐이 공용적 경험의 트리거에 손을 댄다.
그렇게 개인은 안락한 세계의 파괴를 맛 본다.

내 오염의 영향력은 비록 크지 않지만
그 가능성의 덩치는 수번이나 증언되었다.
그래서 뒤끝이 저린 식은땀보다 빠른 이해력을 요구한다.
당신이 잘 모르던 당신의 욕구를 거머쥘 수 있도록 말이다.
# by 크리 | 2009/09/28 00:47 | 영혼 | 트랙백 | 덧글(0)
기절
졸린 눈 같은건 아무래도 좋다.
이분마다 하품을 한다.
거리를 채우던 안개가 너무 높아 잘려나간 달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잔뜩 예쁜 단어를 모아두었던 종이는 구겨진 재가 되고 만다.
겨울이 되고 싶은 바람이 서서히 북극의 화장을 한다.
좁지만 뻔한 길 위를 우두커니.

편두통이 잠깐 떨어졌을 때 난 황홀해진다.
어디서 배워먹은 지저분한 습관일까.
고통이 마약이 된다.
연애가 일상에게 그러듯이.

자꾸 떠오르려는 그걸 가라앉히면서 빈 거리를 밍숭맹숭 본다.
사진처럼 고이 모셔둔 메모지와 같은 그래프에서
음산하고 또 나른한 추억을 맛본다.
이렇게 나약해진 개인의 틈에 달콤한 과도가 꽂힌다고 했다.
다이아몬드는 되지 못하지만 영롱한 유리가 되기로 한 결심에 금이 간다.
야릇한 신음소리가 파쇄음을 대신한다.
눈꺼플이 움직이는 동안은 너무 길어서 벌써 시신은 서너개가 쌓인다.
죽어가는 내 얼굴들이 하나같이 증오로 가득하다.
지옥도와 같이 고개를 돌릴 수가 없다.
분노한 미간은 생각의 계곡을 가로질러 날아와
내 감옥을 사정없이 두들긴다.
감옥.
그래 감옥을.

이마를 잠깐 만지고 나자 코가 아프다.
아주 멀리서 빛의 냄새가 퍼져 나온다.
지독한 향수라도 되는 양 코를 막아보지만 부질없다.
아침냄새가 나를 떠민다.

산책중독은 재미로 가득하다.
그러나 하나 뿐인 발소리와 쥘 것이 없는 빈 양손은 그렇지 않다.
쓸모 없는 몸뚱이를 규칙적으로 씻는 것은
타인의 하루를 모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비누향으로 가릴 수 있는 한가지를 생각하며 점수를 매긴다.

며칠째나 연속으로
잠에 드는 시간을 내가 쥐지 못한채로
몽롱한 절벽 위에 비틀거리고 있다.
하릴없이 기절의 관에 나를 눕힌다.
누군가 부활의 기도를 해줄 걸 바래보지만 현실을 알고 있다.
아무도 가면을 놓으려 하지 않지.
풀벌레와 잎새를 스치는 바람소리는 없지만
째깍거리는 시계를 메트로놈삼아 수를 센다.
얼마에 도달하면 기절할 수 있을지 그리며.
# by 크리 | 2009/09/27 00:46 | 입 | 트랙백 | 덧글(0)
바람개비
머릿속에 바람개비가 돌아간다.
서로 아르릉대며 자릴 바꾸는 해와 달은 엎치락거리지만
고르지 못한 고양이의 이름의 빈자리는 그 자리에 있다.
어느 추운 겨울날의 저녁 속에 멈추어 선 나와 같이.

귀를 통해 흘러 들어오는 소리는 점차 다양해지는 듯 했다.
모른체 지내왔던 세계의 귀퉁이에서 새로운 사람들의 인사가 늘어갔다.
남자, 여자, 아이와 어른, 아니지 상관없었다.
애초에 그런 중류의 의미는 항상 없어왔다.
연습과 경험의 대상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나는 연신 탄성이었다.
알고 있던 이름인가 그렇지 않은 이름인가
그런 애매모호한 의문은 내 머릴 저리게 하는데 성공했다.
수명의 촛불을 부는 입술의 떨림처럼 나는 한껏 전율과 다툴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한밤중의 나는 삭막하다.
늘어난 이름들은 길어진 손톱이라도 된 것처럼
자꾸 나를 할퀴고 긁어 파낸다.
정신을 차리기 전까지 피와 진물이 나는가 싶었더니
어느새 희뿌연 뼈를 깎아내는 참이다.

신경써야 하는 부분이 늘어났다.
다시 말해, 기대치가 늘어났다.

수억의 아스피린 잔을 들이킨 듯 위장이 녹아내린다.
약속의 몇시간 전임에도 용맹한 고독이 날아든다.
홀로
비가 그쳐버린 언덕을 질주하고 있다.

아무도 마실 공기를 뱉어주지 않는 폐허다.

머릿속에 바람개비가 돌아간다.
면면마다 각기 다른 이름이 붙어있지만
결국 그 전부가 가르키고 있는 웃는 얼굴은 한 사람의 것이다.
진공의 속에서 회전하는 후회의 시스템에서
현실과 완벽하게 다른 꿈에서 깬 해수가 솟는다.

비참한 것은 너가 안아주지 않는 몸뚱이가 아니라
안아주던 온기를 잊어버렸을 기억.

그리고 매일 물을 주는 화초에 너의 이름을 붙이길 저항하는 아침.

아무의 시선도 받지 않는 공기와 같은 내 시선의 끝에 자리잡은
구름색깔 네 어깨의 기분은 어떠할까.
# by 크리 | 2009/09/26 00:45 | 입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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