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지만 꾸준히
는 자기희망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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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 한번의 휘두름에 백명(百命)이 사그라드는 것이 아니라
한번의 휘두름을 위해 백명(百名)의 이야기가 들어가는 것.
깊이는 양이 아니라 질에서 오고 의미는 풂이 아니라 얽음에서 온다.
꿈을 꾸는 시간엔 필히 눈을 감고 있는 중이다.
눈감음마다 그림자보다 무겁고 빛보다 어두운 망령의 손가락질이
피할 수 없는 한가운데로 몰린다.
소리도 얼굴도 잊어버린 어제에 묻어두고 온 맹약의 구절이 괴롭힌다.
수없이 두드리는 변혁의 문은 한 걸음씩 더 멀어지며 배신한다.
나를.
나를.
녹이 슨 안검은 정해진 주기마다 죽었다 살아난다.
갈등 역시도, 봄으로 나오길 즐기는 듯 하다.
돌아갈 수 없는 그 때로는 돌아갈 수 없다.
형언할 수 없는 깊고 검은 존재가 등 뒤에서 두 어깨에 손을 올린다.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긴박감 속에서
사진 조리개 열리듯 조금 눈을 떴다가 늦겨울 나뭇잎 떨어질 새라 눈꺼플이 떨어진다.
굳이 날짜를 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격지심이 남아서.
맨숭맨숭하게 찢겨 죽어갈 즈음에 사람이 낼만한 웃음 소리를 여러번 되감아 본다.
그 언제는 만족이 있었냐마는 여전히 내키는 장면이 없다.
가끔 주인없는 비명이 환청이라는 좁을 길을 따라 나오지만
허둥대며 시위를 감아봐도 늦다.
늦다.
인내로부터 하품보다 많은 수만큼 탈옥한 불안과 후회가 노래를 부른다.
익숙한 가락은 아닌데 흥이 난다.
나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자, 툭툭, 어깨를 쳐 온다.
깊고 검은 의무감이다.
만드는 것도 부수는 것도 포기하면서 쥐어 짜낸 시간 내내
곧고 길게 나를 따라오고 있어야 할 발자국을 돌이켜 볼 용기가 든다.
곧고 길게 나를 따라오고 있어야 할 그림자를 돌이켜 볼 공포가 든다.
아이폰으로 접속.
아이팟 터치에서 사용자 경험은 일관적으로 이어져왔다.
태블릿 개인 컴퓨터는 키넥트 인풋을 지향한다.
이 장치를 통해 내 삶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
그 새 물결을 얼마나 수렵할 수 있는가.
우리는 세계관의 변형에 얼마나 소극적인가가 최대 미궁이다.